PHOTOMAN  사진강좌 - 사진의 역사 사진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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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SA (농업안정국, Farm Security Administration) 1935∼1942
미국 제 32대 대통령 프랭클린 루즈벨트의 신경제정책이었던 뉴딜정책(New Deal)의 실시를 위해 대공황기 속에 처해있는 농민의 구제와 정착화를 목적으로 한 부서의 명칭으로서 농업안정국 또는 FSA라 불렸다. 1930년대에 세계적인 경제공황이 불어닥치자 당시 농림부 차관이자 콜롬비아 대학의 정치경제학 교수였던 렉스포드 테그웰(Rexford G. Tugwell)은 곤경해 처한 농부들의 재정적 지원을 해주기 위한 임무를 띤 기구의 우두머리로 세워졌고 터그웰은 그의 제자였던 로이 스트라이커(Roy E. Stryker)를 이 기구에 가담시켜 시각매체를 활용하여 지원하고자 농업안정국 산하에 사진단을 조직하도록 하였다. 따라서 스트라이커에게는 미국 농민의 힘겨운 생활상을 심도있게 보도할 사진촬영 계획을 지휘할 임무와 역사분과의장의 임무가 주어져다.
그의 지휘아래 운영된 FSA의 사진단은 도로시어 랭(Dorothea Lange), 워커 에반스(Walker Evans), 러셀 리(Russell Lee), 아더 로드스타인(Arthur Rothstei), 벤샨(Ben Shahn) 등과 같은 뛰어난 사진가들을 채용하여 사진부분에서 가장 큰 규모의 공동작업을 펼쳤다. 이 사진단들이 주로 촬영한 농민들의 모습은 대개 소작인이나 소작농, 모래폭풍과 가뭄으로 인해 황폐된 대평원 지역의 여러 주로부터 피해 나온 이주민들의 문제들과 또 영세 농민의 경제적 문제들로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1942년에 전쟁으로 인하여 FSA의 프로젝트가 종결되었을 당시 의회 도서관에는 무려 272,000점의 사진이 수집되어 방대한 다큐멘터리 컬렉션을 만들었다.러한  FSA 컬렉션은 당시의 사회 비평가들뿐만 아니라 문예인들에게도 영향을 미쳐 결국 그것은 발흥하고 있는 포토 저널리즘과 시각적 의사소통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일반적으로 주된 목표는 스트라이커가 하나의 길을 제시하였지만 본래 사진가가 아니었던 스트라이커는 장비나 기법을 비롯한 문제와 시각적 스타일 등은 각자 사진가들이 정하도록 하는 현명한 선택을 하였다. 그는 사진에 있어서 초점, 필터, 분위기 등은 사진이 영상언어로 쓰이기 위한 도구들에 불과하다고 밝힌 바있다. 이때의 사진은 그 주제가 특이하였고 묘사된 사건들을 담은 뉴스 사진이 거의 없었으며 질적으로나 기술적, 미학적으로나 모두 높은 수준의 사진들을 보여주고 있다. 아직도 여러 서적과 잡지, 영화, 텔레비전 등에서 제한없이 널리 이용되어 우리에게 감흥을 불어넣는데 현재에도 프린트를 원할 경우에는 워싱턴 미국 의회도서관 등 공적기관에 콜렉션되어 있어 소정의 비용만 내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되어있다.  FSA에서 가장 활발하게 사진작업에 임했던 사진가들의 활동모습을 보면...
워커 에반스 (Walker Evans)
이 기구에 고용된 최초의 사진가 가운데 한 사람이 되어 약 1년6개월에 걸쳐 FSA를 위해 활동하였다.  FSA에서 커다란 활약을 했던 남부를 여행하면서 토지의 조건을 기록했고 소작인의 곤궁한 처지와 그들의 가옥과 소유물, 그들이 일하는 방법, 수확한 농작물과 그들이 다니는 학교, 교회 그리고 가계들을 위주로 기록하였다. 워커 에반스가 찍은 대부분의 대상은 누추한 빈민들 이었으나 그의 해석은 항상 위엄에 넘치는 것이었다. 그는 주로 직접적인 정면시각으로 사진을 찍어 솔직하고 리얼리티한 방식으로 보여지도록 하였는데 에반스는 곤궁한 농민들의 생활상을 파악하고자 인물위주보다 그들이 생활상이 반영된 공간을 위주로 촬영에 들어갔다.
도로시어 랭 (Dorothea Lange)
다큐멘터리 사진에 한 획을 그은 랭의 사진세계는 주로 FSA에서 보여준 방식으로 끝까지 고수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녀가 맡은 FSA에서의 주제는 이주 농민들로서 이를 가장 대표하는 사진이 바로 1936년작인 <Magrant Mother 이민 노동자의 어머니>이다. 이주 농민들의 생활과 그 상태를 기록한 사진으로 이주자들이 일거리를 찾아 이 캠프에서 저 캠프로 이주하며 생활하는 불쌍한 어머니가 텐트 속에서 어린애에 둘러싸인 모습을 통하여 당시의 미국 노동자의 삶과 얼굴을 전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녀의 사진이 큰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이유는 사실의 기록과 정서적 감동이라는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정책적인 이유로 시작된 다큐멘터리 기록적 사진이기도 했지만 그 안에는 이주 노동자들의 삶의 진실을 느낄 수 있도록 감동적인 해설서였기 때문이다. 더이상 어쩔 수 없는 삶의 막다른 골목에 서있는 인간의 내면세계를 보여준 랭의 사진세계는 한 시대의 사건들의 기록에만 머물지 않았기에 오늘날까지도 그녀의 사진을 보면 사람들의 가슴에 와 닿게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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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돌이 이주민 어머니 Magrant Mother" (1936),
by Dorothea Lange

아더 로드스타인(Arthur Rothestein)
1935년에 콜롬비아 대학을 졸업한 직후에 최초의 사진가로 고용되었다. 1936년 오클라호마의 진흙 구덩이 지역으로 여행하던 중 그가 촬영한 것은 오클라호마 주의 키마론 군으로서 바람의 침식으로 인해 심한 피해를 입은 지역으로 아마도 그의 가장 널리 알려진 사진이자 가장 유명한 사진은 <모래폭풍 Dust Storm>의 공간이기도 하다. 그가 촬영한 모래폭풍 사진의 결과는 워싱턴을 설득시켜 침식과 한발이 강타한 대평원 지역에 정부의 원조를 보내도록 하는 뜻깊은 일을 한 것이다. 그는 또한 국토를 종횡으로 가로지르면서 기억될 만한 사진들을 찍으며 보냈다. 그중  <하얀 두개골 Bleached Skull>이라는 작품이 있다.   로드스타인은 미국인의 삶을 사진으로 기록하는 일의 가치를 확고하게 믿고 과거의 삶이 어떠했는가를 알 수 있도록 정부가 지속적인 지원으로 그 일을 행해야만 한다고 생각하였다.
  이밖에도 벤 샨(Ben Shahn), 러셀 리(Russell Lee), 칼 마이던스(Carl Mydans), 존 베이천(John Vachon), 매리온 포스트 월코트(Marion Post Wolcott), 잭 델라노(Jack Delano), 폴 카터(Paul Carter), 디어도어 정(Theodor Jung)등의 여러 사진가들이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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