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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 캠페인 (Photo Campaign)
전쟁으로 부터 시작된 다큐멘타리 사진은 역사적 사실성에 입각하여 다큐멘터리의 진수를 보여주었는데 전쟁이 종결되자 서부개척에 잠시 눈을 돌려 일련의 사진활동이 있었으나 곧 일상의 사회생활을 주제로한 다큐멘터리에 역점을 두었다. 포토 캠페인도 이 중 하나로서 당시 미국의 역사에서 수많은 이민 가족들은 상당한 문제거리로 등장하였다. 이는 정책적으로 개혁하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었기에 사회개혁운동의 일환으로서 시각언어인 사진을 이용하여 설득하겠다는 것이 포토 캠페인 운동이다. 이 운동에 적극적으로 활동한 사람은 크게 두사람으로 꼽히는데 그들이 바로 자곱리스(Jacob Riis)루이스 하인(Lewis W. Hine)이었다. 이들의 사진활동은 포토 캠페인을 가장 잘 대표하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또한 그 결과에 있어서도 사회개혁을 일으킨 장본인들이므로 이 두사람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자...
자곱 리스 (Jacob Riis) 18901976
19c말경 덴마크 태생의 신문 기자였던 자곱리스(Jacob Riis)는 사회개혁을 위해서 사진을 이용한
최초의 사진가
로 알려져있다. 1849년 덴마크에서 태어나 1870년 미국으로 이민와 뉴욕에서 슬럼 생활을 직접 경험하면서 자랐다. 그후 여러 신문사에서 유명 인사의 스캔들을 폭로하는 사건 신문기자로 전전하다가 1900년대로 들어서면서 자기 주변을 둘러싼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폭로하고자 하나의 도구로 카메라를 사용하였다. 원래는 이들 소름끼치는 상태에 대해 글을 써서 도시보건성 공무원에게 호소하기도 했으나 아무런 결과를 얻지 못했다. 글보다 가장 호소력을 담은 시각언어인 사진을 선택하여 마침내 빈민굴과 셋방 건물 내부의 상태들을 사진으로 제작하게 되었다. 또한 사진이외에 1890년에도 <또다른 절반의 삶은 어떠한가 How the Other Half Lives>와 1902년의 <빈민가의 전쟁 The Battle with the Slum>이라는 제목의 저서들도 출간하여 사회개혁 운동의 지도자적 역할을 수행하였다.
당시 그의 사진은 사회개혁에 목적이 있었기 때문에 미국의 치부라고 할 수 있는 저임금 노동자와 열악한 환경의 공장, 질병이 만연한 건물, 꽉차 넘치는 학교 등을 주제로 다룬 다큐멘터리였다. 이 사진들은 사람들의 분노를 일깨우기에 충분하여 집과 교육에 관한 복지 법률과 어린이 노동금지법을 입법하게 만들었다. 그는 자신이 행하였던 일련의 사진작업이 예술로써의 가치를 인정받고자 하기 보다는 사실적 증거에 입각한 하나의 수단으로 사진을 다루었기 때문에 뉴욕 슬럼가의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다 선명하게 보이게하고자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사진에는 인간적인 짙은 이해와 감동이 담겨져 있어 여론에 불길을 당겨 정책적인 변화를 얻어내는데 성공했다. 사진으로서 정책적 변화를 일으킨 예는 리스가 처음이었으며 그 결과 리스를 슬럼가의 해방자, 복지 향상주의자라 불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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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넝마주의의 집 Home of an Italian Ragpicker" (1888),
by Jacob Riis

루이스 하인 (Lewis W. Hine)  미국, 18741940
본격적인 미국 다큐멘터리의 창시자로 불리는 루이스 하인은 1874년 위스콘신의 오슈코슈에서 태어나 시카고 대학을 나왔고 1901년에 윤리문화 학교의 과학 강의를 위해 뉴욕시로 와서 그곳에서 교재 보조자료로서 카메라를 처음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그의 최초의 다큐멘터리 사진은 엘리스 섬에 도착한 곤궁한 이주민들을 대상으로 헤택받지 못한 사람들의 곤궁함을 보여주기 위해 그의 카메라 사용의 시작이 되었다. 이후 아동 노동 조사위원회의 의뢰에 따라 사회 복지의 시점에서 아동 노동실태를 촬영했는데 후에 그의 사진은 아동 노동법 제정에 크게 기여했다.
그는 주로 사회적 상황, 특히 어린 노동자들에 대한 학대에 관해서 깊이 염려하여 20c초 미국 사회에 만연된 폐습을 개혁자들에게 사진을 증거로 제공하기 위하여 상황을 기록하였느데 그가 주로 촬영한 대상이 되는 곳은 노스캐롤라이나 면방직공장, 펜실바니아의 탄광소, 사탕무우밭과 통조림 공장의 노동자들이었다. 공업화 과정에 의해서 노동을 착취당하고 있는 아동이나 그밖의 노동자들이 위축되어서는 안된다는 입장에서 촬영하였다.
미국내의 소년노동의 실태를 조사에 있어서의 예로서는 소년들이 서부의 석탄광산에서 노동하였으며 노동시간은 오전 7시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석탄의 유독한 가스로 호흡기 질병과 철로레일에 위험이 계속되었다. 또한 남부의 목화공장에서 오전 6시경부터 호후 6시까지 힘든 일을 하였다. 안전표시판에 있는 경고문도 해독하지 못하고 위험한 기계에 의해 손이 절단되기도 하는 악조건에서 노동을 하면서 기껏해야 몇 푼의 돈으로 많은 식구들의 생활에는 여간 힘이드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이러한 상황을 연민의 정을 가지고 촬영에 임하였다.
특권에서 소외된 계층의 사람들의 복지에 크게 관심을 가지고 그들의 일터였던 비참한 노동 착취공장, 쓰레기통 더미에서 놀고 있는 철부지, 이주민들의 주거지가 될 지저분한 주택, 뉴욕시에 흉직하게 산재되어 있는 슬럼에 전락한 사람들 속에 직접 뛰어들어 자신의 주관적입장에서 강력하고 즉각적으로 납득될 만한 비판하게 되었다. 이 사진들은 인간기록(Human Documents)로 발행되었는데 그의 사진은 사회적 의미와 매락을 즉각적으로 이해하도록 도움을 주었다.
이후 그의 활동은 미국 노동자들에게 관심을 집중시켰고 1932년에는 <일하는 사람들 Men at Work>라는 사진집이 발행되었다. 이 사진집에서 가장 주목되고 있는 부분이 바로 세계 최고의 뉴욕 엠파이어 스테이트 102층 빌딩 걸설현장(미국 뉴욕시 33번가로 부터 38번가에 걸친 부지 1931년에 완성)을 완공하는 그날 까지 노동 현장을 추적하여 촬영했다. 도덕적, 윤리적 측면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온 사진가로서의 하인은 촬영 방법에 있어서 아주 당당했다. 자신의 카메라에 들어오는 장면들로 부터 은밀히 찍지 않고 대형 뷰 카메라를 들고 일하고 있는 어린이들 속에 들어가 촬영하기도 해 고용주로부터 돌팔매질을 받기도 하고 사진기가 파손당하는 등 곤란을 겪는 등 수난을 당하면서도 꿋꿋하게 일련의 작업들을 변함없이 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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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롤라이나 방직공장에서 일하는 소녀 Girl worker in Carolina cotton mill" (1908), by Lewis Hine

리스와 하인은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살면서 당시의 미국 사회적 현실에 눈을 돌려 그 현실에 감추어져 있는 모순의 근원, 특히 피지배자 계급으로서 국민들의 괴로운 생활 실태를 사진에 의한 캠페인으로 모든 사람에게 알리는데 큰 공헌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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