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MAN  사진강좌 - 사진의 역사 사진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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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웨지우드(Thomas Wedgwood)와 헬리오 그라프(Heliography)
토마스 웨지우드 (Thomas Wedgwood)
영국태생의 토마스 웨지우드는 카메라 옵스쿠라에 맺혀진 상을 영구히 기록해보려는 일련의 시도를 한사람중 하나이다. 그는 도공의 아들로서 도자기 장식을 위하여 스케치를 하였는데 예술적인 소질이 부족하였기에 어떻게 하면 좀더 스케치를 잘 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중 그당시 예술가들에게 미술의 도구로 이용되었던 카메라 옵스쿠라를 이용하여 손으로 그리지 않고서 이미지를 세길 수 있었다. 따라서 카메라 옵스쿠라를 능숙히 다룰 수 있었고 또한 슐체가 발견했던 은염류에 대한 지식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를 응용하여 상을 고정시키는 실험을 하게되었다.
웨지우드는 1800년이 되기 이전부터 빛에 민감히 반응하도록 질산은을 흰 종이나 가죽등의 재질에 입혀 감광성을 부여한 뒤에 사물등을 올려놓고 광선에 노출을 시키면 그 사물의 자취가 네거티브 실루엣으로 만들어내는 실험을 하였다. 그러나 종이등에 네거티브로 표현된 것을 밝은 곳에 놓아두면 금새 모두 검게 변하게 되어 영구적이지는 않았다. 즉 광선으로 형성된 상이 나중에 밝은데서도 변질되지 않고 이미지를 고정시키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흰부분이 계속 흰부분을 유지하지 못하고 검은부분도 계속 검은부분을 유지하지 못하는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처음 새겨진 이미지 상을 보존하려면 어두운 암실에서나 가능한 일이고 빛이 있는 곳에서는 그렇지 못했다. 이 정착과정이 웨지우드에게 큰 걸림돌이었고 결국 이것을 해결하지 못한채 1805년 34세의 나이로 아무런 보람도 느끼지 못하고 사망하였다. 웨지우드의 이러한 끊임없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정착과정을 완성시키지는 못하여 완전한 사진을 만들어내지는 못했지만 사진의 발명에 큰 틀을 만드는데 기여한 사람임에는 틀림이 없다.
헬리오그라프 (Heliography)
본격적인 사진의 시작을 열었던 사람은 프랑스의 조셉 니세포르 니엡스(Joseph Nicephone Niepce)였다. 그는 프랑스에 소개된 석판기법을 접하면서 석판의 가장 큰 특징인 복제를 사람의 손으로 직접 이용하는 불편함을 해결하여 좀더 쉽게 대량으로  복제할 수 있는 기법을 생각하였다. 그는 토마스 웨지우드처럼 사람의 손이 직접 이용되지 않고 단지 태양 빛의 활동만으로 사진을 완성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끊임없는 연구를 하였고 그결과 웨지우드가 완성시키지 못한 정착과정에서 성공을 거둘수 있었다. 처음에 그는 웨지우드가 사용했던 염화은으로 실험을 하였으나 1817년에 은염류와 마찬가지로 유태의 비투먼 bitumen of judea (역청. 타르의 일종으로 빛에 민감한 아스팔트 형태의 끈끈한 물질)이 빛에 민감하다는 사실과 빛을 받은 뒤에는 기름속에서 녹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이를 이용하여 상을 정착시켰다. 그 과정을 볼것 같으면...
  • 라벤더 기름에 비투멘을 녹여서 백랍판(White Petroleum)에 입혀 감광성을 부여한다.
  • 광선에 노출을 시키면 밝은 광선이 닿는 곳은 비투멘이 단단히 굳어지고 밝은 광선이 닿지 않은 나머지 부분은 부드러운 상태를 유지하여 네가티브 실루엣을 얻는다.
  • 노출에 의해 상이 형성된 백랍판을 라벤더 기름에 다시 담그면 광선이 닿지 않은 부분의 비투멘이 부드러운 상태를 유지하기 때문에 용해되고 제거되어 상을 정착시킨다.
  • 수세후 건조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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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그라의 집 창에서 내다본 조망" (1827년), 니세포르 니엡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통해서 상을 정착시킬 수 있었고 이 방법을 통해서 얻어낸 사진을 '헬리오 그라프'라하여 태양(Helios)+그림(Graphos)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헬리오 그라프 방법으로 완성된 세계 최초의 사진은 1826년 프랑스 중부의 작은 도시 샬롱-쉬르-손(Chhlon-sur-Saone) 주변의 생-루-드-바렌 소재의 그라에 있는 자신의 별장 작업실 2층 창에서 촬영한 것으로 백랍판 16.5*20cm의 크기로 제작되었다. 이 사진은 8시간이라는 긴 노출시간 끝에 얻어졌기 때문에 8시간 동안에 해가 움직여서 해가 지나간 자리만 남고 실제 해는 나타나지 않는 장면을 연출시켰다.  니엡스는 태양의 광선으로 빛어낸 이미지를 잡아내고 정착시켜 사진을 보존가능한 상태로까지 완성시키기는 했으나 더나은 사진의 발전을 위하여 연구하던 중에 1829년 12월 4일에 디오라마로 유명한 루이 자끄 망데 다게르와의 동업관계를 형성하고 그와 함께 꾸준한 연구를 하였으나 4년뒤인 1833년에 니엡스는 그 소망을 이루지 못한채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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