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MAN  사진강좌 - 사진의 역사 사진의 역사
line-b.GIF (56 bytes)

PHOTOMAN

사진의 시작 - 카메라 옵스쿠라
obscure.JPG (16467 bytes)
카메라 옵스쿠라

사진은 19C 수많은 발명품 가운데 하나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당시 화가의 그림에만 익숙 해져 있던 사람들에게 그림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정교한 세부묘사를 보여주는 사진은 그야말로 신기한 발명품이었다. 이러한 사진이 등장하기 까지는 두가지 과학적 과정을 거쳐 서 완성될 수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광학적 속성을 가진 카메라 옵스쿠라(Camera Obscure)이다. 당시 서구 예술가들에게는 좀더 사실적인 묘사와 원근법인 착시가 요구되어 졌기 때문에 보다 더 가깝게 접근하기 위해 연구하는 과정에서 얻어진 결과라 할 수 있다. 사진을 등장시킨 또 하나의 요인은 화학적 속성으로서의 은염류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카메라 옵스쿠라에서 만들어진 생생한 장면들을 직접 따라그리지 않고는 그대로 보존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으나 은염류를 사용하여 상을 고정시킴으로써 영구히 보존 할 수 있는 길을 만 들어준 것이다.

카메라 옵스쿠라는 카메라가 발명되기 훨씬 이전인 BC 4C.에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 가 태양의 일식을 관찰하면서 암상자의 원리에 주목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암상자의 원리 즉 카메라 옵스쿠라의 원리와도 같은데 어두운 방(어두운 상자)의 한쪽 벽 가운데에 작게 뚫린 구멍을 통하여 들어오는 빛이 방 바깥쪽 세상에서 일어나는 장면들 예를들면 원근감, 다양한 색채, 그림자, 미세한 움직임등이 구멍의 맞은편 벽면에 거꾸로 맺 히는 것을 말한다. 이 암상자에 빛이 들어오는 구멍이 커지면 커질수록 상은 흐려지고 작아 질수록 상이 선명해지는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은 지금의 카메라 조리개 역할과 같은 것으로서 그 구멍을 가르켜 '바늘구멍'이라고 불렀다.
이와같은 카메라 옵스쿠라의 원리에서 바늘구멍의 크기에 의해 상의 이미지가 뚜렷해지는 것에 착안하여 어떻게 하면 좀더 사실적이고도 뚜렷한 상을 얻을 수 있을까 연구하면서 초 기의 카메라 옵스쿠라에서 한단계 발전시켜 이탈리아 수학자였던 제롤라모 카르다노 (Gerolomo Cardano)가 렌즈를 부착하게 되었다. 이보다 조금 더 발달된 형태는 현대적인 반사경식 카메라를 닮은 것으로 기존의 상자 맞은편에 상이 맺혀지는 것이 아니라 상자 윗 부분에 젖빛 유리가 씌워지고 그 바로 밑에 45도 각도로 거울을 위치시켜 빛이 렌즈→거울 →반사→유리를 거쳐 상을 맺게 하였다. 렌즈를 이용하면서 화질의 개선은 확실히 이루어졌 으나 약간의 문제가 발생하였다. 이때 쓰인 렌즈는 확대경 유리같은 둥근 접시꼴로 깍여진 즉 볼록렌즈(Barbaro)였는데 이 렌지에 의해서 형성된 상을 평면에 그 상의 끝부분이 왜곡 되어 나타나는 것이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하여 호형으로 깍아 만든 서로 다른 반경을 지닌 두 렌즈의 조합. 즉 오목렌즈와 볼록렌즈로 왜곡되지 않은 정상적인 상을 선명히 맺을 수 있게되었다.  
처음 암상자 형태로 만들어진 카메라 옵스쿠라는 1657년 카스파르 쇼트에 의해서 만들어 졌는데 초기에 이 카메라 옵스쿠라는 사람이 그 속에 들어가도 될 만큼 큰 방이어서 유용하 게 사용되지는 못했으나 큰방 형태에서 오두막 형태로, 오두막 형태에서 가마형태로, 천막형 태로 그 크기가 점차 줄어들게 되었다. 이후 17C에 이르러 요한 찬에 의해서 운반이 가능한 암상자 형태에 이르기까지 축소되고 18C에 들어서는 다양한 형태와 규격까지 등장하게 되 었다.
사진의 효시인 카메라 옵스쿠라는 11C-16C의 숱한 저술에서 카메라 옵스쿠라의 원리와 천문학을 이용한 방법이 소개되었지만 처음부터 사진을 위해 쓰이지는 않았다. 사실상 이 원리가 많이 알려지게 된 것은 르네상스 시대에 예술계에 알려지면서 부터였다. 이탈리아의 위대한 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가 1519년에 카메라 옵스쿠라를 드로 잉(drawing)하는데 최초로 이용하기 시작하여 화가들에게 그림 그리는 도구로 자리를 잡아 가고 있었다. 당시 화가들에게는 창의적 미를 추구하되 사실적인 묘사와 원근법을 기본으로 할 것이 요구되어졌는데 여기서 카메라 옵스쿠라는 무엇보다도 사실적인 표현과 원근법을 쉽게 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었기에 화가들이 많이 사용하게 되었다. 또한 카메라 옵스 쿠라는 비록 화가들이 아닌 일반인들이라 할지라도 그대로 따라 그리기만 하여도 그림이 완 성되는 놀라운 위력을 보여주었다. 또다른 드로잉 도구로는 카메라 루시다(Camera Lucida) 라는 것이 있었는데 윌리암 울러스턴(Dr. William Wollaston)에 의해서 1807에 디자인된 것 이다. 사용법이 카메라 옵스쿠라보다 어려워 일반인들이 쉽게 사용할 수는 없었다. 카메라 옵스쿠라와 카메라 루시다 모두 수많은 미술도구중 하나로서 평면위에 공간과 입체를 재현 시키기 위한 보조수단으로 많이 사용되어졌다. 특히 서투른 화가들에게 예술적 결함을 메워 줌으로서 현실을 포착하고 사실적인 묘사를 가능하게 해주는데 도움을 주었다.
사진이라는 것은 한 순간에 일어나는 상황을 빛의 활동에 따라 민감히 반응하는 물질위에 고착시키는 것인데 카메라 옵스쿠라에서 사실재현은 가능했지만 그 상을 그대로 고정시킬 방법이 없었다. 그러나 은염류에 빛을 비추면 급격한 반응을 보인다는 것을 밝혀내고 이를 이용하여 상을 고정시키려는 일련의 노력으로 마침내 사진을 탄생시킬 모든 준비를 끝마친 샘이었다. 은염류에 대한 언급은 13C 알베투스 마그누스, 16C 제오르지우스 파브리쿠스 등 이 그 특성에 주목한데서 시작하였지만 사실상 17C에 이르러서 은염류가 검게 변하는 현상 이 관찰되면서 부터 본격적인 연구에 들어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검게 변화하는 원인을 잘못파악하였다. 즉 은염류가 변하는 것이 공기나 태양열 태문이라고 생각하고 빛에 영향에 대해서는 미쳐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18C에 이탈리아의 바티스타 베카리아는 실 험을 통해 은염류에 대한 빛의 작용을 밝히는데 성공하였다.
나아가서 은염류를 과학적인 방법으로 관찰하는데 노력을 기울였는데 우선 연금술사 인 크리스토프 아돌프 발두인(Cristoph Adoph Balduin)의 경우 발광물질의 제조를 위한 실 험과정에서 탄산칼슘이 질산속에서 용해되어 질산칼슘을 생성하여 이 화합물의 침전물을 증 류시 증류기 속에 가라앉은 앙금이 가열되어 빛을 발하는 것을 발견하고 이 앙금을 '빛의 운반자'라는 이름의 포스포러스(Phosphorous)라 지칭하였다. 이후 1727년 독일의 요한 하 인리히 슐체(Johann Heinnrich Schulze)에 의해서 이루어졌는데 그는 발두인의 실험을 기 초로 하였다. 단 발두인은 순수질산을 이용한 반면에 슐체의 경우 질산에 은을 함유하였다. 그러므로 탄산칼슘을 질산은에 용해시켜 만들어진 혼합물을 얻었는데 이 혼합물이 빛에 노 출되었을 때는 진한 보라색으로 변하지만 가열했을 경우 아무런 변화가 없다는 것을 관찰하 고 공기나 열에 의한 것보다 빛에의해 변한 것이라고 결론 지을수 있었던 것이다. 이 혼합 물을 '어둠의 운반자'라는 이름의 스코토포러스(Scotophorous)라 이름을 붙였다. 뒤이어 화 학자들은 즉시 슐체의 실험을 반복하였고 18C 말에는 카메라 옵스쿠라의 상을 고정시키는 방법이 완전하지는 못했지만 잠재적인 형태로나마 존재하게 되어 사진이 탄생된 마지막 준 비작업을 실상 끝낸 것이나 다름없었다.

   

Copyrights (c) All rights reserved by PHOTOMAN since 1998 . 10 .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