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MAN  사진강좌 - 사진의 역사 사진가의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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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 스미드 (W. Eugene Smith,  미국,  19181978)
  • 1918년          미국 캔자스주 위치토 출생
  • 1937년        「뉴스위크 New Week」지의 기자로 활동
  • 1939∼41년  라이프 Life」지의 계약 사진가로 활동
  • 1942년          지프데비스사 소속으로 태평양전쟁 취재
  • 1944년        「라이프 Life」지의 종군 사진가로 사이판, 오끼나와 전투를 취재
  • 1945년          태평양 전쟁에서 부상입고 일시 활동 중단
  • 1947년        「라이프 Life」지로 돌아와 활동
  • 1951년          <스페인 마을(Spanish Village)>로 U.S 카메라상 수상
  • 1955년        「라이프 Life」지를 그만두고 「매그넘 Magnum」에 가담
  • 1956∼57년   구겐하인 재단의 기금으로 <피츠버그(Pittsburgh)>를 촬영
  • 1959년        「매그넘 Magnum」탈퇴
  • 1968년        《유진 스미스》 사진집 출판
  • 1971년          뉴욕과 일본에서 회고전
  • 1975년          뉴욕 국제사진센터에서 『미나마따병(Minamata)』전 개최
  • 1978년          에리조나 대학의 사진창조센터에서 사진을 가르치며 일생을 마감
18살의 어린 나이로 「뉴스위크」지의 기자로 사회에 첫발을 내딛은 유진 스미드는 사진의 시작부터 끝나는 날까지 보도사진의 길을 고집한 사진가이다. 1936년 「라이프(Life)」지의 출현으로 말미암아 보도사진의 전문지가 탄생되어 세계를 바라보는 인간의 시각을 확장시켜 주어 단시간내의 대량의 정보를 대중이 공유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라이프」지를 기점으로 우후죽순 늘어난 포토 저널리즘 시대가 펼쳐준 것이다. 즉 문자언어에 의한 '읽는다'는 행위가 영상언어와 결합되어 '보는 것'을 추가시켜 사람들의 이해를 돕는데 큰 몫을 한 셈이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스미드의 주된 활동무대였던 「라이프」지는 스미드에게 큰 도약의 발판이 된 셈이다. 그러나 누구나가 부러워 하던 「라이프」지를 편집자와의 마찰로 인하여 자리를 박차고 나와 프리랜서로 사진활동을 계속하였는데 스미드의 성격상 본래 개성이 워낙 강하고 주장이 너무도 뚜렷했기 때문에 편집자와의 마찰이 잦았다고 한다. 그가 「라이프」지를 그만두게 된 결정적인 계기도 <알베르트 슈바이처 Albert Schwitzer> 라는 작품 때문이었는데 이유인 즉 스미스드 슈바이처 박사를 찍을 때의 의도는 대개 성인으로 바라보는 슈바이처 박사라는 입장에서 촬영에 들어간 것이 아니고 우리 주변에서도 흔한 보통 사람으로 표현하되 다만 그의 생명경외 정신, 사랑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 것인데 편집자의 입장에서 마음대로 사진을 선별하여 트리밍에서 레이아웃까지 고쳐 작가의 의도를 완전히 무시했다는 것을 이유에서 였다. 이후 1955년에 사진 원고 은행격인「매그넘(Magnum)」에 가담하여 작가 의지대로 자신이 찍고 싶은 사진활동을 벌이다 워낙 한곳에 얽매이기 싫어하는 성격이기에 1959년에 매그넘도 탈퇴하게 된다.
스미드의 사진세계에 있어 가장 주된 요지는 <알베르트 슈바이처>처럼 "사랑"이다. 사람은 원죄를 가지고 태어나 먹고 먹히는 생존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노력과 자신의 살길을 위해 잔인함과 폭력성을 겸비하고 있지만 결국 인간은 인간을 사랑할 수 밖에 없다는 믿음을 쉽게 느낄 수 있도록 사진으로 표현하고 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1949년의 <시골의사>, <알버트 슈바이처 박사>, 1951년의 <스페인 마을>, <조산부>,<산파> 1952년의 <촬영중인 찰리 채플린>, 1954년의 <자비로운 슈바이처>, 1972년의 <미나마따병> 등 다수의 작품이 있다. 이중 1951년 6월 4일자 라이프지에 실린 <스페인 마을>은 카르맨과 투우, 정열적인 춤으로 알려져있는 스페인을 촬영한 것으로 파시스트 프랑코의 압정 밑에서 찌든 민중들의 진정한 생활과 감정을 잘 표현해준 작품으로서 이 작품으로 인하여 U.S 카메라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또한 인간가족 전에서도 그의 사진은 높이 평가받았는데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는 스미스의 <낙원뜰에 이르는 길 A Walk to Paradise Garden> 작품을 통해서 자신의 아이들을 촬영한 작품인데 이는 두 아이가 숲을 빠져나가 미래의 길로 향한다는 느낌을 주는 미래지향적인 사진을 보여주었다.
유진 스미드는 1942년부터 그가 부상을 당하는 45년까지 3년여에 걸쳐 태평양 전쟁의 종군 사진가로도 활약을 하여 아래의 <유일한 생존자>를 촬영할 수 있었다. 1944년 태평양전쟁은 막바지로 접어들면서 한층 더 치열해져가고 있을때 일본군은 가장 중요한 거점인 사이판의 천연적인 지형을 이용하여 크고 작은 동굴들을 요새지로 무장하여 생활하였는데 이 사이판이 1944년 7월 7일에 미군의 맹공 앞에 완전히 함락되었다. <유일한 생존자>는 이때 촬영된 것으로서 미군의 화염병사기가 내뿜은 화염으로 인하여 초토화된 사이판의 한 동굴에서 수백명의 일본군 병사들과 민간인들의 시체들 가운데 유일하게 숨결이 살아있는 작은 생명체가 미군 병사에 의해 극적으로 발견되어 구출된 순간이었다. 유진스미드의 <유일한 생존자>제2차세계대전을 찍은 수많은 사진 중에서 가장 인간적이고 감동적인 사진이라고 평해졌는데 비록 전쟁이 서로를 살상하는 비인간적인 행위지만 그 속에서도 어린 생명을 소중히하는 군인의 모습은 역설적이면서도 또한 진한 인간애를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동굴 속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아기를 따뜻하게 품에 안고 있는 병사의 모습은 천사와도 같이 숭고하며, 병사는 어린 생명을 구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라도 올리는 듯 숙연한 자세로 침묵하고 있는 모습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이는 인간애로 충만된 한 도막의 드라마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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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한 생존자" (1944), W. Eugene Smith

1971년에 들어서 유진 스미드는 뉴욕에서 이제까지 자신의 사진활동을 마무리짓는 회고전을 열고 일본계 미국인 여자 미쇼코와 결혼하여, 일본에서도 회고전을 개최하였다. 이후 3년간 일본에 머물면서 미나마따(Minamata)병을 심층취재하였다. 《미나마따(Minamata)》 일본 남부의 미나마타시와 시라누이 해의 연도에 있는 어촌 사람들의 문제를 다룬 사진으로서 화학공장에서 배출된 메틸 수은으로 인한 환경오염의 희생자들의 죽음, 기형아 출생, 신경장애 등의 모습을 영상언어로 표현하고 있다. 아래 사진은 그중 <목욕하는 도모꼬>로 주인공인 도모꼬는 태어나면서 미나마따병에 걸려 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식물인간으로 살면서 어머니에 품에 안기어 목욕을 하는 모습을 완벽한 영상미로 보여주고 있다.

유진 스미드의 《미나마따(Minamata)》사진집을 본 미국의 평론가인 수잔손탁은  "주민 대부분이 수은 중독으로 신체 장애를 일으켜 서서히 죽어 가는 모습을 기록한 유진 스미스의 이 사진은 우리들의 분노를 자아내는 고뇌를 기록했으며, 어머니 무릅위에서 온몸을 비틀며 빈사상태에 있는 딸은 현대 각본연출법(Dramatugy)의 참된 주제로서 탐구된 페스트의 희생자가 넘치는 세계를 찍은 한 장의 피에타(Pieta : 성모 마리아가 예수의 시체를 무릅에 안고 있는 그림상)이다."라고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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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모꼬를 목욕시키고 있는 어머니(Tomoko Uemura in Her Bath, Minamata)" (1972),   by W. Eugene Smith

그의 사진 표현방식은 대체적으로 가난하고 낮은 밑바닥 세계를 중심으로 하고 있는데 여기에 화조도 어둡고 무겁게 느껴지도록 구성하여 더욱더 그들의 아픔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스미드는 이부분에서 사회현실의 모순을 드러내고자 함이 많은데 이보다 나아가 인간의 사랑, 행복, 평화를 확신하며 미래지향적으로 느끼고 그것을 표현했다는데 더욱 의의가 있는 것이다. 시련의 과정속에서 헤메이고 있는 안타까운 모습보다는 좀더 나은 곳으로의 도약을 위한 의지를 보여주고자, 또 현실의 낮은 삶의 공간에서 현실을 극복하고자 하는 미래지향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즉 무능력하게 자기 삶을 포기하고 회피하거나 안주하기 보다는 당당히 맞서 싸워 이기겠다는 의지가 엿보이고 있다. 사진의 주인공이 되는 그들과 다른 상황에 처해있는 스미드도 그들과 같은 위치에서야 객관적 다큐멘터리 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당사자의 입장의 상황을 기록하고자 하였다. 따라서 그들의 입장이 되고자 취재할 대상에 대한 충분한 자료를 수집하여 촬영에 임하는 열성을 보였다.
스미드 자신이 평가하기를 자신은 이상주의자라고 말하고 다녔다. 이상주의자...도달할 수 없는 공상과는 달리 현실 속에 뿌리를 두고 고난과 시련을 부딪쳐서 꺾이지 않고 나아갈 길을 나아가는 것이 이상의 세계에 이르는 길이다. 그가 꿈꾸고 바라보는 이상을 머리속에 그리는 것이 아니라 현실 한복판에서 구체적이고 엄연한 사실로 실현시키기 위해 뛰어드는 실천적인 이상주의자가 바로 유진 스미드이다. 강한 개성을 가진 성격의 소유자였던 유진 스미드의 사진세계도 이러한 몸부림을 영상으로 정착시킬 때는 자기 내면적 표현을 위주로 중시하기 보다 "사랑"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바탕위에 객관적인 입장으로 다큐멘트하여 세상에 널리 알리고자 하였던 사진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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