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MAN  사진강좌 - 사진의 역사 사진가의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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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안 아버스 (Diane Arbus,   미국,  1923∼1971)
  • 1923년           미국 뉴욕 태생
  • 1941년           18살에 사진가 앨런 아버스(Allan Arbus)와 결혼
  • 1955년~57년 리제트 모델에게 사진을 사사받음
  • 1962년           앨런 아버스와 이혼
  • 1965년~66년 파슨즈 디자인 스쿨(Parson's Design School)에서 사진강의
  • 1968년~69년 쿠퍼 유니언 스쿨(Cooper Union School)에서 사진강의
  • 1967년           뉴욕 현대미술관이 기획한 『뉴 다큐멘트전 New Documents』참가
  • 1971년           손목 끊고 자살
사진가인 남편 앨런 아버스(Allan Arbus)의 영향을 받아 사진계로 발을 디딘 다이안 아버스. 그녀는 사진을 시작한 초창기 부터 약 15년 가까이 「하퍼스 바자 Harper's Bazaar」를 비롯한 패션지에서 활동하며 패션사진을 전문으로 찍었다. 그러나 1955년 리제트 모델(Lisette Model)에게 사진을 사사받으면서 순수한 사진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자연히 그의 스승이었던 리제트 모델에게서 가장 큰 영향을 받아 패션 사진계에서 순수 사진계로 전환함과 동시에 대상의 선택과 파악방식도 답습하였다. 상처 받은 불구자들의 운명적 고뇌에 관심을 가진 리제트 모델이나 기형, 불구자, 성도착증자등 비정상적인 사람들에 관심을 가진 다이안 아버스나 같은 맥락에 서있다.
다이안 아버스의 사진은 주제면에서나 표현방식에 있어서 광범위한 주제를 다루기 보다는 일관성있게 흐르는 경향이 있는데 우선 불구자, 난쟁이, 기형아, 성도착증자, 기인 등과 같은 비정상인을 대상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거의 10년동안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사진을 찍었다. 그러나 사진의 모델이 되고 있는 비정상인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혐오감을 주는 모습인지, 우습게 보이는지, 불쌍하게 보이는지를 인식하고 있지 못하는 듯 하다. 왜냐하면 이들은 전쟁이나 사고 등으로 인해 정상적인 삶을 살다가 불행을 경험한 사람들이 아니고 대부분 태어날때 부터 선천적으로 비정상적인 삶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였기 때문인데 이는 전자들에 비하여 후자들의 고통을 덜 받고 있다고 생각하고 그들은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수용적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을 바라보는 아버스의 입장은 동정심이나 연민의 정따위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비정하게 바라보거나 비꼬는 것은 더억이 아니었다. 오히려 순진함과 놀라움의 입장에서 정말 아무런 가치도 부여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들을 발견하고 사진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들과는 상황이 매우 틀린 부유한 가정에서 유복하게 자라난 아버스로서는 관습이나 안전한 것, 일상적인 것과는 동떨어진 위험한 것에 오히려 매력을 느끼고 자신의 행복이나 순결성을 무너뜨리고 싶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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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류탄 장난감을 들고있는 아이
(Child with a toy hand grenade in Central Park)" (1962),
by Diane Arbus

사진의 형식면에서 보자면 수동적인 인간상을 보여주기 위하여 일관적으로 정방향 포맷형태를 취하고 있다. 사진의 모델이 되는 사람은 정면으로 카메라를 바라보게 하여 화면의 중앙에 배치하여 좌우대칭이 되도록 구성을하는데 이는 활동하는 자연스러움을 배격하고 의도적으로 움직임을 멈추게하여 카메라 앞에 서도록 하므로써 수동성과 함께 진지함과 솔직성을 바탕으로한 모델의 본질을 파악하고자 하는데서 시작된 형식이다. 특히 사진들 중에는 유난히 두사람이 한쌍을 이루는 사진이 많은데 이들 쌍은 대개 반대되는 경향을 보여준다. 예를들면 쌍둥이를 찍어도 각자에게서 풍겨져 나오는 이미지가 반대되어 한사람은 행복한 모습으로... 한사람은 슬픈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나 흑인과 백인을 같은 화면상에 대비시키는 것 등이다. 그리고 사진의 주인공이 되는 사람들로 부터 사진촬영에 들어가자는 제안에 승낙을 받고 나서 찍거나 또는 그들와 친구처럼 유대관계를 형성한 다음에 사진촬영에 들어갔기 때문에 꾸며지지 않은 그들의 본래 모습을 지니고 있다. 아버스의 사진은 주제의 특이함과는 정반대로 정반대로 표현하는데 있어서는 전통적인 기록성을 바탕으로 매우 평범하고 일반적인 수법을 그대로 답습하였다. 대개 기념사진적 전공법으로 특이한 표현기법이나 접근방식은 전혀 동원되지 않았다. 여기에는 작가의 표현도 억지로 붙이려하지 않았고 작가의 주체와 동화시키려 하지도 않았다.
아버스는 생전에 자신의 사진집을 하나도 출판하지 못했다. 또한 전시회도 단 3번에 그쳤다. 그것도 모두 합동 사진전이었는데 특히 주목을 받게 된 사진전 1967년 뉴욕 현대미술관이 기획한 리 프리들랜더 개리 위노그랜드와의 3인 합동전으로 『뉴 다큐멘트전 New Documents』이다. 살아생전에 자신만의 전시회도 없었던 아버스는 사후 1972년에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그녀의 업적을 정리하기 위해 추모전이 열렀는데 이는 석달동안에 25만명을 돌파하여 큰 인기를 얻었다. 이것은 17년전 같은 장소에서 열린 『인간가족전』에 비해서 훨씬 웃도는 숫자였다. 이후 캐나다, 서유럽, 일본, 오스트레일리아 등에서 순회 전시되면서 세계적인 관심을 받기도 하였다. 이렇듯 생전에는 대중성이 없는 작가였으나 사후에는 자살이라는 하나의 커다란 사건과 함께 전설적 인물이 되어버렸다. 전설적 인물이 된데에는 자살이 가장 큰 역할을 하고 있지만 충격적인 주제의 특수성 때문에 관심을 가진 점도 감안하여야 한다.
다큐멘터리 사진의 전통을 이어받아 이것을 다시 새롭고 독특한 스타일로 승화시킨 아버스는 새로운 다큐멘터리의 길을 닦아놓은 것이다. 예전의 객관적 입장에서 대중을 위한 다큐멘터리 사진보다는 자신의 주장과 개성에 입각하여 접근한 다큐멘터리로의 전환이라는 점에 있어서 의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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