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MAN  사진강좌 - 사진의 역사 사진가의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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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레드 스티글리츠 (Alfred Stieglitz,  미국,   1864~1946)
  • 1864년  미국 뉴저지에서 태어남
  • 1971년  6살 때 뉴욕으로 이사
  • 1881년  16살 때 가족모두 유럽으로 건너감
  • 1887년  부터 사진을 본격적으로 시작
  • 1890년  미국으로 돌아와 사진활동
  • 1897년  기관지「카메라 노트 Camera Notes」창간
  • 1902년  사진분리파(Photo-Secession) 운동 전개
  • 1903년  기관지 「카메라 워크 Camera Work」창간
  • 1905년  291화랑
  • 1917년 「카메라 워크」와 사진분리파 운동이 공식적으로 막을 내림
  • 1946년  세상을 떠남
1881년 그의 나이 16살되던 해에 독일로 기술공학을 수학하러 갔다가 전공을 바꾸어 사진 술을 익히게 되었다. 1887년 스티글리츠는 영국의 사진협회에서 최초로 인정을 받았는데 이 상은 영국 주관지 「아마추어 사진가」가 개최한 콘테스트에서 <재미있는 농담>이라는 작품으로 수상하였다. 이때 심사위원이었던 피터 헨리 에머슨 단독 심사였는데 그가 말하기를 스티글리츠의 작품이 강렬하지는 않았지만 억지로 효과를 내려 하지 않고 직접적이고 정직하게 찍었으며 또한 구성상의 형식적 틀에 얽매이지도 않았다고 평하였다. 그러나 스티글리츠가 본격적으로 활동한 시기는 1887년 22살 되던 해에 학생의 신분으로 이탈리아를 여행하면서 찍은 사진이 런던에서 공모한 현상에서 일등으로 당선되면서 부터였는데 이후 스티글리츠는 수많은 작품을 통하여 상을 거머쥐면서 사진에 몰입하였다.
스트레이트 포토(Straight Photography)의 시작
1839년 루이 자끄 망데 다게르(Louis Jacques Mande Daguerre)에 의해서 고안된 사진이 발명된 이래로 사진계는 두 갈래로 나뉘어져 왔다. 하나는 초상사진과 같이 실용적인 목적으로서 기록사진이고, 다른 하나는 창조적인 표현으로서 예술사진이었다. 기록사진의 가장 기본적인 바탕은 광학적 속성을 충분히 사용하여 대상의 사실적인 재현, 세부묘사를 이루는 것이었고 예술사진의 기본적인 바탕은 작가의 내면세계를 표현하고자 했기 때문에 사진의 가장 큰 특징인 광학적 속성은 그리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지 않았다. 예술사진이라 함은 작가의 내면세계가 표현되는 것을 기본으로하여 시대에 따라서 다른 방식으로 발전하였는데 스티글리츠가 활동했던 1890년대에는 회화적 사진만이 예술로 인정을 받고있는 추세였다. 이는 의도적으로 흐려진 연초점의 사진이라든가, 합성사진과 같이 짜맞추는 사진, 인화과정 에서의 극단적인 수정 등으로 예술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회화를 바탕으로 사진을 제작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당시 기록사진과 예술사진은 완전히 다른 길을 향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여기에 스티글리츠는 양갈래 길을 하나로 합치는 즉, 기록사진과 예술사진을 하나로 통합하 는 스트레이트 포토(Straight Photography)를 주장하여 주목을 받았다. "직접적인 사진" 또 는 "순수사진"이라고도 불린 스트레이트 포토란 당시 예술로 인정되던 회화적 수법을 부정 하고 사진의 독자적인 기술인 광학적 속성과 기계적 기록성을 최대한 사용하여 "있는 그대 로" 순수한 기계적 기록성을 되찾자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는 평범한 일상생활 가운데서 사진의 소재를 찾았고 인공적으로 조작하지 않고도 창작이 가능함을 보여줘 「사진의 독자적 예술성을 구축」하는 공로를 세웠다.
사진분리파 운동
1896년 스티글리츠는 '아마추어 사진가회'와 '뉴욕 카메라 클럽'을 단일화하여 좀더 넓은 지역에 걸쳐 좀더 새롭게 조직을 개편하여 '뉴욕 카메라 클럽'이라는 이름으로 출발하였다. 카메라 클럽의 목표는 일차적으로 미국에서의 회화적 사진의 기준을 향상시키는 것이고 나아가 범국가적 연례회 개최 및 국립 사진 아카데미를 창설할 것을 목표로 삼고 있었는데 이러한 전통적인 사진방향과 어긋난 스티글리츠는 뉴욕 카메라 클럽에서 탈퇴하고 1902년에 사진분리파(Photo-Secession)을 결성하였다. 사진분리파란 새로운 사진클럽으로써 예전의 낡은 사진의 틀에서 벗어나 새롭게 나선 부류를 말하는 것으로서 이때 동참한 사진가들이 앨빈 랭던 코번(Alvin Langdon Coburn), 프랭크 유진 (Frank Eugene), 게르트루드 캐세비어 (Gertrude Kasebier), 클라렌스 H. 화이트(Clarence H. white)등 41명의 사진가들과 함께 출발하였다. 스티글리츠가 미국 사진계에 있어서 중심인물로 떠오른 가장 큰 계기가 바로 사진분리파를 통해서였다. 사진분리파의 효과적 전개를 위해서 1903년에 「카메라 워크 Camera Work」가 창간 되었다. 카메라 워크를 통해서 사진분리파 회원들과 아울러 유럽의 주도적 사진가들인 에반스, 코번, 드마시 등의 개인작품집들이 선보였고 힐과 아담스, 줄리아 마가렛 카메론의 과거 사진들도 수록되었다. 따라서 회화적 사진의 세밀한 기록을 남긴 기관지이기도 했다. 2년뒤인 1905년에는 뉴욕 5번가에 「291화랑」을 열어 사진분리파의 소화랑을 만들었는데 291화랑은 사진분리파의 발표무대일 뿐 아니라 전위적 미술가들의 전시회장으로도 쓰였다고 한다.
알프레드 스티글리츠의 사진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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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등선실(The Steerage)" (1907), by Alfred Stieglitz
1907/13"x10-3/8" Photogravure on tissue
스티글리츠의 사진세계는 1917년을 기점으로 누구보다도 뚜렷하게 전기와 후기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스티글리츠가 전기에 보여준 사진은 사실주의에 입각하여 사회적 현실을 표현하였고 후기에는 단순한 사실주의에서 한단계 나아가 은유적 사실성을 중심으로 자신의 감정이입을 더한 작품을 선보였다.
스티글리츠의 전기를 대표하는 사진으로는 <삼등선실 The Steerage>, <5번가의 겨울 Winter on Fifth Avenue>, <종점 The Terminal>등을 들 수 있 는데 이중에서도 특히 1907년의 <삼등선실>은 그의 전기 작품중 사실주의를 가장 대표하는 작품이다. 이 사진은 그가 유럽여행을 위해 호화 여객선 '카이저 빌헬름 2세' 의 일등갑판 산책중에 찍은 사진으로써 특등실과 삼등실의 대조를 통하여 우리 삶의 모습 을 대표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주의에 입각한 사진에서의 예술표현은 미적추구가 아니라 진실. 삶의 진실을 추구하는데 있다고 할 수 있다. 그이 대표작인 <삼등선실>은 1893년에 촬영한 <5번가의 겨울>에서와 같이 모든 것이 작가의 의도데로 균형이 잡힐 때까지 참고 기다린 것과는 달리 스티글리츠가 주제나 형식면에서 즉가적인 인식을 함으로써 이루어진 작품이다.
후기를 대표하는 사진으로는 1920년대부터 구름을 주제로한 <이퀴벌런트 Equivalent> 시리즈를 들 수 있는데 '이퀴벌런트'는 '동등한 것', '대응하는 것'이라는 뜻으로서 자신의 내면적 생각과 동등한 것을 구름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의 힘으로 통제가 불가능한 구름을 통해서도 작가의 사상, 희망, 열망, 공포등과 등가를 이루는 표현이 가능함을 보여주고 있다. 이퀴벌런트 시리즈는 대부분 4×5인치 그라플렉스 카메라로 찍은 것으로 깊은 흑새조와 작열하는 백열빛, 그리고 어렴풋한 회색빛이 어우러져 형식미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정물의 클로즈업을 통하여 정밀묘사도 구사하였는데 정물의 극단적 접근으로 인하여 정밀묘사가 이루어지고 이러한 부분을 통해서 전체적인 암시를 은유적으로 보여주는 작품들도 선보였다. 1930년대에는 스티글리츠가 건강이 악화된 관계로 야외에서 촬영하기 힘들어지자 높은 건물에서 그가 자라난 뉴욕을 배경으로 건물을 촬영하는데 열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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